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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회의 파문장과 소각①
이성수목사/하늘샘교회
 
오세영   기사입력  2018/05/14 [17:01]
▲ 이성수목사/하늘샘교회     ©편집국
1520년 6월 멧돼지 사냥을 즐기며 놀던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에게 최후 통첩장을 보냈다. 60일 이내에 이단성을 인정하고 그 동안의 주장들을 철회하지 않으면 파문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루터는 아예 교황의 교서를 불태우며 철회를 거부하였고 교황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파문장을 공포하였다.

“주여 일어나소서! 멧돼지가 거룩한 포도원을 파괴하고 있나이다.”

교황의 눈에는 루터가 멧돼지로 보였지만 루터의 눈에는 교황이 교회라는 포도원을 허는 여우처럼 보였다. 교황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에게 루터 재판을 요청하였다.

당시 21살의 카를 5세는 스페인의 유명한 아사벨라 여왕의 외손자였다. 이사벨라는 딸 후안나에게 자신의 왕국을 물려주었고 이는 다시 후안나의 아들 카를 5세에게 건네졌다.

스페인 국왕이었던 카를 5세는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신성로마 황제로부터 독일과 유럽의 여러 영지도 물려받았다. 1519년 카를 5세는 독일의 왕으로 아헨에서 즉위했고 이듬해 신성로마 제국 황제로도 임명되었다.

그는 독일과 스페인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나폴리, 시실리, 북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등을 모두 지배하는 유럽의 최고 군주였다. 카를 5세는 루터 문제로 자신의 제국에 분란이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제국 회의를 열어 종결지으려 했다.

루터는 카를 5세로부터 안전을 보장 받고 1521년 4월 16일 보름스에서 열린 제국회의에 참석하였다.

이틀 후 카를 5세와 루터는 처음으로 만났다, 이는 세계 역사상 가장 극적인 만남들 중 하나로서 중세를 상징하는 인물과 근대를 상징하는 인물의 대면이었다. 또 가톨릭의 수호자와 개신교 개혁자의 충돌이었고 유럽의 가장 권세 있는 군주와 가난한 수도자의 만남이었다.

카를 5세는 루터의 해명을 듣기조차 거부했고 단지 딱 한 가지 질문만 던졌다. “문서에 나온 그대의 주장들을 철회하는가?”

루터는 답변을 위해 하루의 시간을 요청하였고 이튿날 다시 황제와 수백의 청중들 앞에서 결연한 의지로 이렇게 외쳤다.

“페하! 제 대답은 이것입니다. 저는 수없이 오류를 범한 교황과 공의회를 신봉하지 않습니다. 제 양심과 성경에서 직접 가르쳐주지 않는 한 저는 철회할 수도 없고 철회하지도 않겠습니다...오!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제가 여기 섰나이다.”
<다음호에 계속>

▲ 발트부르크 루터하우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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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14 [17:01]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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